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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8. 비애 “이토록 참혹한 상실감이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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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산가족상담지원센터
댓글 0건 조회 6,549회 작성일 21-03-26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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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중요한 누군가를, 중요한 무언가를 잃을 때마다 우리는 슬픔에 전율한다.

죽음에는 입관이나 장례식 같은 의례가 따르며, 슬퍼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이 인정된다.

그러나 이혼에는 법정 판결문을 듣는 것 이외에 별다른 의례가 없으며,

종종 당사자들이 그로 인해 슬프다는 점도 인정받지 못하거나 남들이 그런 점을 알아보지 못한다.

그러나 애정관계가 끝났다는 것은 슬퍼할 만한 이유가 너끈히 되고도 남는다.




슬픔의 여러 가지 얼굴




사랑이 끝나면 여러 가지를 잃는다. 가장 명백한 상실은 사랑하던 파트너를 잃는 것이다.

함께 세운 미래의 계획, 애정관계, 남편이나 아내 혹은 연인역할, 부부일 때 주어진 지위도 잃는다.

미래도 잃는다. ‘죽음이 우리를 갈라 놓을 때까지’ 지속될 줄 알았던 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계획과 목표, 공동의 일, 가정과 집이 있었다.

이제 미래의 삶을 구성한 이 모든 것이 더는 지속되지 않는다. 이러한 미래의 상실은 받아들이기 힘든 항목이다.

사랑이 끝나면서 오는 고통은 과거의 고통을 돌아보게 한다. 사람들은 과거에 무언가를 잃었음에도 충분히 슬퍼하지 못했다. 지나간 고통을 다시 일깨우면 슬픔의 농도가 더욱 짙어진다.

무언가를 상실하고도 그 슬픔을 충분히 표출하지 못한 사람들은 이혼 후에 찾아오는 슬픔이 특히 더 고통스럽고 힘들 것이다.




비애의 증세




많은 사람이 자신이 처한 상황을 끊임없이 늘어놓는 바람에 친구를 잃어버린다.

그러면 다시 새로운 친구를 찾아 같은 넋두리를 늘어놓는다.

비애에 빠진 사람은 슬픔과 무관한 것들을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슬픔을 제대로 표현해야 한다.

슬픔은 밀고 당기는 효과가 있다. 상처를 입으면 가슴한구석이 뻥 뚫린 듯한 느낌이 든다.

이럴 때 당신은 친구가 당신의 공허감을 채워 주기를 바란다.

그렇지만 텅빈 듯한 느낌은 다시 상처받기가 쉬워서 사람들이 지나치게 가까이 다가온다 싶으면 밀어낸다.

친구들로서는 정말 혼란스러울 것이다.

슬퍼하다 보면 감정을 소진하고 불면에 시달리는 것이 일상사가 된다.

잠이 가장 필요할 때 잠을 못 자고 감정적으로 시달려 하루 종일 피곤하다. 슬퍼하는 것은 힘든 노동이다.

먹는 일도 문제다. 목구멍이 졸리는 듯해서 음식물을 삼키기가 어려울 때도 있다.

때로는 입안이 바짝 말라서 먹기가 곤란할 것이다. 도통 식욕이 없어서 억지로 무언가를 좀 먹어야 할 때도 있다.

이러한 몇가지 이유 때문에 사람들은 이 단계에서 몸무게가 줄어든다.

한숨은 몸의 긴장을 완화할 뿐 아니라 숨을 깊이 쉼으로써 ‘감정을 폐부에서 끌어내’ 풀어해지기도 하다.

감정기복이 심한 증상 역시 비애 단계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시커먼 구렁텅이에서 빠져 나와 기분이 좋다가도 뚜렷한 이유없이 감정조절이 안되어 울음을 그칠 수 없을 때도 있다.

이런 일은 당신이 아직 슬픔을 충분히 다스리지 않았다는 명확한 증거다.

이 시기에는 현실감각을 상실할 수도 있다. 비현실적인 세계 혹은 몽롱한 상태에 빠지는 것이다.

마치 영화를 감상하듯 주변환경을 관망하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 자신과 거리가 먼 일인 양 행동한다.

감정에 가까이 다가가지 않으려 할 수도 있다. 심적 고통이 엄청나게 크다 보니 자신을 보호하려면 감정을 침묵케 해야 한다. 그래서 감정이 ‘마비된 상태’를 경험할 수도 있다.

많은 사람이 슬퍼하는 동안 환각을 경험한다. 옛 파트너를 보거나 그(그녀)의 목소리를 듣는다.

몸의 한 부분이 없어진 것 같기도 하다. 심장이 없어진 듯한 느낌은 중요한 사람을 잃어버렸음을 상징한다.

이런 환각이 슬픔의 정상적인 반응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무서울 수도 있다.

외로움, 집중력 감퇴, 약해지고 무기력해짐, 우울, 죄책감, 섹스에 대한 무관심, 성불능 등도 깊은 슬픔과 함께오는 증세다.

자기비난(끊임없이 자기 잘못을 캐묻고 과거를 되돌리고 싶은 욕구) 역시 끈질기게 따라붙는다.

분노를 느낄 수도 있다.

자살충동 역시 이 시기에 흔히 나타나는 증세다. 이혼 세미나에 참석한 사람의 4분의 3이

이 무렵 자살충동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이런 여러 감정 때문에 당신은 숨조차 쉬기 힘들 것이다.

통제가 안 될 만큼 심한 감정기복, 현실감 상실, 환각, 우울, 자살충동....당신은 두려울 것이다.

“내가 미쳐 가는 건 아닐까?” 광기가 실재하는 감정이긴 하지만, 그것은 영구적인 증세라기보다는

지금 처한 상황 때문에 생겨나는 증세다. 미쳐 간다고 느낀다면 그건 슬픔의 정상적인 반응이기가 쉽다.

이러한 증세들을 깨닫고 그것이 슬픔의 작동임을 수용하면서 고통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면

비애가 조금씩 가라앉을 것이다. 울고 소리지르고 울부짖는 것은 슬픔을 파괴적이지 않게 표현하는 방식이다.

적절한 때, 적절한 장소에서 슬퍼함으로써 슬픔을 본격적으로 다루겠다고 결심하라.

 예를 들어 근무 시간은 울고 슬퍼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때다. 직장에서는 슬픔을 잠시 옆으로 밀쳐 두고 일에 집중하라.

슬퍼할 시간을 따로 마련해 두면 감정을 통제하기가 훨씬 수월해져 다른 시간에 슬픔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슬퍼하려고 비워 둔 시간에 충분히 슬퍼하라! 슬픔을 봐 주지 않으면 슬픔이 당신을 점령할 것이다.




비애의 단계 : 쿠블러 로스 박사의 연구




[1단계]

상실감이 찾아왔을 때 제일 처음 나타나는 반응은 거부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고, 분노를 억누른 나머지 우울해지면서 무감각 상태에 빠진다.

절대 내 곁을 떠나지 않으리라는 희망을 품고 그(그녀)에게 깍듯이 대한다.

관계가 끝난 사실을 아무에게도 자신에게조차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2단계]

관계가 끝났음을 서서히 인정하면서 분노가 쌓인다. 이 분노 때문에 상대방이 돌아오지 않을까봐 걱정도 된다.

약간의 죄책감과 애증을 함께 느낀다. 수년 동안 그 관계에서 경험한 좌절감이 터져 나온다.

친구들은 당신이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감정이 상하면서 그 사람을 참아 냈는지 의아해할 수도 있다.

슬픔에서 오는 분노를 인정하고 표현할 때 비로소 슬픔의 과정으 겪기 시작한다.




[3단계]

사랑이 끝난 걸 직시해도 아직 완전히 보내고 싶지 않을 때 협상이 시작된다.

“네가 돌아오면 뭐든지 할게. 태도를 바꾸고 무엇이든 참을게. 제발 돌아와 줘!”

이 단계가 바람직하지 않은 까닭은 애정관계가 끝난 뒤 오는 외로움과 불행을 피하려고

시도하는 재결합을 시도하기 때문이다.




[4단계]

마침내 관계를 놓아보낸다. 어떤 면에서 이 단계는 새벽이 오기 전 칠흙같은 어둠과도 같다.

이 단계의 우울함은 1단계와 다르다. 이것인 인생이란 말인가? 삶의 의미를 묻는 내면의 목소리가 자주 들린다.

자신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삶의 심오한 목표를 찾아 좀더 의미있게 살기 위해 인격적으로 성장하는 단계다.

‘열심히 노력했는데 다시 구렁텅이로 빠지다니! 이제는 마음을 다스리고 싶지 않아.’하는 생각이 든다.

다시 우울함이 찾아오니 놀랄 수 밖에.

하지만 이 단계를 아는 사람은 훨씬 수월하게 겪어낸다.

목적이 있고, 오래가지 않을 것이며 초기의 우울함과 다르다는 것을 알기에 마음이 편안하다.




[5단계]

이 단게에 이르면 사랑하던 사람과의 관계를 잃었다는 사실을 수용한다.

고통스러운 슬픔에서 자유로워지고 과거의 관계에 집착하지 않는다.

이제 한층 더 충만한 자유와 독립을 향해 산에 오르기 시작한다.




아이들도 슬퍼하게 하라


아이들도 중요한 것을 상실했을 때 충분히 슬퍼해야 한다.

우리는 아이의 고통을 덜어주고 싶어서 이렇게 말한다.

“울지마, 괜찮아. 곧 아빠(엄마)를 만나게 될거야” 이런 약속을 아이에게 반드시 할 필요는 없다.

그보다는 아이의 슬픔을 수용해 주는 것이 좋다.

“아빠를 못 만나서 슬픈 거 알아. 네가 그렇게 사랑하는 아빠와 헤어져 살아야 하니 슬플거야.”

우리는 아이가 자기 감정과 느낌을 표현 하도록 하기보다 우리의 감정과 죄책감을 아이에게 투사하기가 더 쉽다.

우는 것을 막지 않거나 울지 못하게 간섭하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더 자연스럽게 울고 슬퍼할 것이다.

슬픔에서 오는 분노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분노하면 그 분노를 없애 주려고 한다.

“글쎄다. 네가 좀더 자라면 이해할게다. 언젠가 엄마 아빠의 결정이 당연하고 건강했다는 걸 알게될 거야.”

그러나 이럴 때는 아이들이 그냥 화내게 허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빠가 가버려서 무척 화가 났구나!”

아이들도 쿠블러 로스가 말한 슬픔의 다섯 단계를 거친다.

분명 부모는 아이와 이혼한 것이 아니므로 아이가 느끼는 상실감은 어른이 느끼는 것과 다르다.

부모자식관계는 여전히 지속된다.

다른 감정도 마찬가지지만, 부모가 슬픔에 대해 말로 떠드는 것보다 아이에게 슬퍼하는 방법을

몸소 보여주는 것이 훨씬 더 영향력을 발휘한다.

아이가 슬퍼할 수 있도록 도와주길 바란다. 슬퍼해도 괜찮다는 것을 보여 주지 않거나

그들이 슬퍼하는 것을 막지 않기를 바란다.




슬픔을 넘어서자




비애단계를 이해했고 슬퍼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는 것을 알았으니 자신에게 맘껏 슬퍼하게 할수도 있다.

믿을 만한 친구나 가족, 성직자 혹은 당신을 지지해 줄 상담원을 찾아가서 슬픔의 밑바닥까지 표현하라.

이제 과제를 하나 주겠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슬픔을 일으키는 대상을 향해 ‘작별’편지를 써라.

집, 관계, 과거의 상실에 작별인사를 해도 좋다. 어려운 과제이므로 일상적인 상실부터 써내려가길 권한다.

이 단계는 험난하고 뼈아픈 과정이다. 가슴에 묻어두지도, 즉시 다 해결하려고 애쓰지도 말라.

슬퍼하는 동안 구명줄을 던져 줄 친구에게 도움을 청하라.

산은 준비가 되면 언제든지 오를 수 있다.




출처 : 다시 ~p145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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