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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7. 죄책감과 거부당함 "떠난 사람 유죄, 남겨진 사람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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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산가족상담지원센터
댓글 0건 조회 7,165회 작성일 21-03-26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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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이 남겨진 자에게 상처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들은 남겨진 자를 보지 않으려고 애쓴다.

보는 것만으로도 죄책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들은 남겨진 자보다 항상 산에 잘 오른다.

아직 관계가 끝나지 않았을 때부터 산에 오르는 것을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떠나는 사람은 관계를 떠나는 쪽이다 보니 상당히 죄책감에 시달린다.

남겨진 사람은 그 관계를 붙들고 싶어하는 쪽이다 보니 거부당했다는 느낌을 지우지 못한다.




거부당하는 것은 정말 가슴 아프다




관계를 맺다 보면 누구나 한번쯤은 뒤에 남겨지는 상황에 처한다.

버림받고 나면 나를 거부하는 까닭이 무엇인지 알아내려고 자신을 계속 들여다보게 된다.

어느쪽이든 관계가 종결될 때 버림받는 쪽이 생기게 마련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

거부당한 느낌은 극복하는 한 방법을 관계의 종결이 내 탓이 아니라는 점을 배우는 것이다.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일은 쉽지 않다. 관계에 대한 책임은,

자신이나 이전 파트너 혼자 지는 것이 아니라 둘 다 져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만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러니 낙담말아라.

당신은 소중한 사람이며 사랑을 주고 받을 능력이 있다.

당신에게는 다른 사람들에게 선사할 특별한 것, 바로 고유한 개성이 있다. 이 점을 믿어야 한다.




약간의 죄책감이 큰 효과를 발휘한다.




죄책감은 살아가는 방식을 결정할 때도 도움이 된다.

불행히도 많은 이들이 지나친 죄책감으로 자신을 엄격하게 통제하다 보니

자신을 행복하게 해줄 생산적인 일에 에너지를 쏟지 못하고 있다.

적절한 균형은 선택의 폭을 엄격하게 제한하지 않으면서 방향감각을 유지할 만큼의 ‘적당한’ 죄책감을 가질 때 생긴다.

지나친 죄책감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관계를 파기한 행위에 대해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관계를 끝낸 것은

애정관계가 두 사람을 파멸로 이끌었기 때문이고, 따라서 그것은 적절한 선택일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죄책감에 시달리기 보다는 “그건 우리 두 사람에게 최선의 선택이었어.”라고 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죄책감은 보통 일정한 행동기준, 실현가능하고 스스로 선택한 그 기준에 미치지 못했을 때 느끼는 것이고 건강한 징표이다.

“결혼을 유지하는 건 내 기준의 하나에요. 결혼생활을 잘 이끌지 못했기 때문에 내기준을 내가 어겼기 때문에

죄책감을 느껴요.” 당신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자신이 인간임을 받아들이기 바란다. 그 누국도 완벽하지는 않다!

어쩌면 이 경험 덕분에 다음 번에는 더 잘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이전 파트너가 긍정적인 무언가를 배우도록 도와줄 수도 있다.




죄책감이라고 다 같진 않다




적절한 죄책감과 우리 내면의 거대한 창고에서 함부로 떠다니는 죄책감.

적절한 죄책감이란 잘못을 저질렀거나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여 그 때에 기분이 상할 때 느끼는 감정이다.

애정관계가 끝날 때 다른 누군가를 아프게 하고 자신을 아프게 한 데 대해 상심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어린 시절에 시작된 죄책감을 머리에 이고 산다.

작은 일이 일어나도 엄청난 죄책감이 들고 일어나 급기야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만다.

당신 내부에 이런 죄책감이 있다면 심리치료사의 도움을 받아 최소화하고 통제하는 것이 좋다.

거부당한 느낌과 죄책감을 극복하는 데는 수용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따뜻하고 의지가 되며 당신을 수용해 주는 친구나 지지 집단을 찾으면 거부당한 느낌은 얼마든지 치유할 수 있다.




“당신은 어느쪽이지?”




이혼과정은 떠나는 자나 남겨진 자 모두에게 여러모로 힘들다.

브루스의 연구결과를 보면 이별하는 시점에서 더 고통을 느끼는 사람은 남겨진 자다.

특히 놓아 보내기 단계와 분노 단계에서 그렇다.

그러나 관계를 유지하는 동안 떠날 자가 감당한 고통을 헤아려 본다면 남겨진 자보다 더욱 고통스러웠음을 알게 될 것이다.

떠나는 사람들은 관계를 정리하기 전에 감정을 다스리기 시작하기 때문에 애정관계에서 친구로 되돌아 갈 수 있다.

그러나 남겨진 사람들은 관계가 끝난 시점에서도 여전히 떠나는 자를 깊이 사랑하고 있다.

‘떠난 자’와 ‘남겨진 자’라는 말에 부정적인 반응을 강하게 보이는 이들이 있다.

그런데도 굳이 이 용어를 쓰는 까닭은 관계가 깨지고 나면 떠나는 자와 남겨진 자가 생기게 마련임을

현실로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서다.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당신은 좀더 신속하게 산에 올라갈 수 있다.




떠나는 자의 변




떠나는 자의 변은 이렇다. “머리를 식힐 시간과 공간이 필요해. 그걸 얻기 위해 이 관계를 좀 벗어나 있고 싶어.

난 당신을 아껴. 그러나 같이 살고 싶을 만큼 사랑하지 않아. 왜 사랑하지 않느냐고 묻진 말아줘.

단지 내가 떠나야한다는 사실만 알 뿐이니까. 당신을 아프게 해서 나도 기분이 좋지 않아.

그러나 함께 살아도 당신에게 상처를 주기는 마찬가지야. 그러니 헤어질 밖에 달리 도리가 없어.

우리, 친구로 남을 수 있겠지?”

남겨진 자는 이렇게 말한다. “날 떠나지마! 왜 날 사랑하지 않는 거지?

내가 뭘 잘못했는지 말해주면 고칠게. 내게 잘못이 있는 건 분명한데 그 게 뭔지 모르겠어.

그러니 내가 뭘 잘못했는지 말해줘. 난 우리가 사랑을 잘 유지해 왔다고 생각하는데 어째서 떠나려는 거지?

제발 내게 시간을 줘. 친구가 되는 것도 좋지만 난 당신을 사랑해. 그러니 제발 떠나지 마.”

떠나는 자는 이렇게 회답한다. “당신과 사는 게 행복하지 않다는 말을 진작에 하고 싶었어.

우리는 뭔가 달라져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어. 그러나 당신은 들으려 하지 않았어.

난 최선을 다했어. 더는 시간이 없어. 당신은 날 붙들려고 하지만 난 친구로 남고 싶어.”

남겨진 자는 상처를 입고 울기 시작한다. 과거를 돌아보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이해하려고 애쓴다.

“나는 왜 사랑받지 못하는 걸까?”, “우리 사이가 왜 끝나야만 하지?”

남겨진 사람이 충격에서 헤어날 시간을 버는 동안 그에겐 부인하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밀려온다.

남겨진 자는 심적으로 엄청난 고통에 시달린다.

떠나는 자와 남겨진 자사이의 보편적인 대화이다. 시기문제도 명확하다.

떠나는 자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해 왔다고 하면서도 ‘수 개월 또는 수 년’동안 떠날 궁리를 했다.

떠나는 자가 실제로 선언하면 남겨진 자는 사실을 부인하고 이를 믿으려 하지 않는다.

“우리는 정말 잘 지내왔잖아.”라고 하면서.

두 사람이 우선시 하는 것이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라.

떠나는 자는 자신의 성장을 원한다. “난 이제 앞만 보고 나아갈 거야.”

남겨진 자는 관계를 유지하려 한다. “내게 시간이 필요하고 내가 어떻게 변해야 할지 조언이 필요해.”

결국 떠나는 자의 죄책감과 남겨진 자의 거부당한 느낌이 분노로 바뀔 때 ‘이혼 전 좋은 시절’이 끝난다.

‘이혼 전 좋은 시절’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전략이 있다.

남겨진 자가 분노를 빨리 터트리면 양쪽 다 마음이 편해지고 적응과정을 빨리 거칠 수 있다.

떠나는 자는 남겨진 자가 분노를 표출할 때 죄책감을 덜 느낀다.

남겨진 자 역시 분노를 배출함으로써 덜 우울해진다. 감정을 추스르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떠나는 자는 한동안 죄책감을 느껴야 하고, 남겨진 자는 거부당하여 한동안 우울해하는 과정이 필요할 수도 있다.




좋은소식과 나쁜소식




우리는 혼동을 감수하고라도 떠나는 자와 남겨진 자의 범주를 더 자세히 다루고자 한다.

이 범주는 떠나는 자이면서 성숙한 자, 떠나는 자이면서 미성숙한 자,

남겨진 자이면서 성숙한자, 남겨진 자이면서 미성숙한 자로 세분할 수 있다.

떠나는 자이면서 성숙한 자들은 관계를 지속시키려고 애쓴 이들이다.

그들은 기꺼이 변하려 했고 변화를 위해 마음을 쏟았으며 필요하다면 상담을 받으려 했다.

두 사람 모두에게 파괴적인 관계를 끝내는 데 필요한 판단과 힘과 용기가 있다.

떠나는 자이면서 미성숙한 자들은 도망가는 아이를 닮았다.

그들은 그 관계를 벗어나기만 하면 금세 행복해질 것처럼 믿고 다른 사랑이 무대 옆에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감정을 외면하고 바꿀 필요가 있는 태도에 대해서도 성찰하려 하지 않는다.

심지어 끝내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거나 ‘작별인사’도 없이 서둘러 떠난다.

남겨진 자이면서 성숙한 사람은 마음이 열려 있고 정직하며 관계를 위해 애쓰면서 필요하다면 상담도 받으려고 한다.

그들은 외도를 한 적이 없으며 대화하려고 애써왔다.

그러나 그들 역시 관계를 헤치는 일을 해왔다는 점에서 ‘무고한 희생자’는 아니다.

남겨진 자이면서 미성숙한 자들은 관계를 떠나고 싶지만 떠날 사람이 될 용기와 힘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상대가 어쩔 수 없이 떠나게 만든다.

이 네 가지 범주에 딱 맞아 떨어지는 사람은 거의 없다.

떠나는 자든 남은 자든 어떤 점에서는 성숙하고 어떤 점에서는 미성숙하기 때문이다.




“결국 난 돌아올지도 몰라”




남겨진 자가 감정적으로 그럭저럭 적응할 즈음 떠나는 자가 돌아와서 화해를 제안하는 경우가 있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지만, 남겨진 자가 관계를 ‘정리했을 때’ 떠난 자가 돌아왔다는 점을 주목하면

아마 사실에 가장 근접한 해석이 나올 것이다.

 죄책감이나 책임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고는 더 동등해진 관계로 돌아왔을 수도 있다.

이 때 남겨진 자가 보이는 전형적인 반응은 돌아온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맥빠지는 소리




떠나는 자와 남겨진 자는 시기가 다르다. 떠난 자는 종종 관계가 유지되고 있을 때 적응 과정을 시작한다.

감정도 다르다. 죄책감과 거부감. 태도도 다르다. 자신의 성장을 바라며 떠나려는 마음과 관계를 끝내길 두려워하는 마음.

이처럼 둘의 태도와 행동이 다르다 보니 관계의 종말에 적응할 때 외상이 더 커진다.

이렇게 시기와 태도와 시기가 다를지언정 이 두사람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둘 다 관계가 삐걱거리게 하는 데 비슷한 몫을 담당했기 때문이다.

남겨진 자가 관계에 대해 입을 열기 시작하면 떠난 자가 계속 제기한 바로 그 문제들을 남겨진 자의 언어로 이야기할 것이다.

그러므로 떠난 자와 남겨진 자를 가르는 중요한 요소는 시기이다.

죄책감과 거부당한 느낌이 찾아오는 것은 자연스럽고 전형적인 현상이다.

관계가 끝나면 이 감정이 극대화되고 강조되는 경향이 있다.

이 점을 인지하면 이런 감정에 더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을 버리지 말라




아이들은 떠나는 자에게 관계를 무너뜨린 책임을 물음으로써 자신의 고통과 좌절감을 떠넘긴다.

아이들은 방식의 차이가 있을 뿐 떠나는 자나 남겨진 자 모두 관계의 종말에 공헌 했다는 근소한 차이를 파악하지 못한다.

대개 이혼한 부모의 자녀들은 남겨진 자로 간주된다.

그러나 아이들은 거부당한 느낌과 부모의 순탄치 못한 결혼생활에 자신이 책임이 있다고 느끼면서 죄책감을 가진다.

아이들을 부모가 버리지 않는 다는 점과 부모의 이혼은 아이들의 잘못이 아닌 어른들의 문제라는 점을

인식하게 도와줘야한다.

부모의 이혼을 완전히 수용하지 못한 채 어른이 되면 그것이 애정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부모가 별거를 하거나 이혼을 한 이후에도 아이들과 관계를 잘 유지한다면 아이들은 이런 감정을 잘 다스릴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당신의 상태는?




당신은 떠난 자와 남겨진 자의 차이, 감정과 태도를 이해하고자 애쓰고 있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관계가 해체되는 동안 일어난 일을 파트너가 어떻게 보았을지 숙고하라.

관계를 종결을 좀더 성숙한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기를 바란다.




출처 : 다시 ~p130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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